처음으로 헌혈을 시작한 때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고2 때 친구 하나가 헌혈하러 가자고 했다.
나 : 그게 뭔데? 친구 : 따라가보면 안다. 고마 가자~~
나 : 그게 뭐냐고? 친구 : 안 멀다. 바로 앞이니까 가면 안다.
나 : 우쒸 그게 뭐냐고? 친구 : 피 뽑는거~~
나 : 피를 왜 뽑는데? 친구 : 주절주절 블라블라....
암튼 이렇게 해서 따라 갔던 기억이 난다.
처음 방문했던 헌혈의 집은 지금(?) 아니 예전에 부산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자주 이용하던 '서면 헌혈의 집'이었다.
학교가 서면에 있다보니 젤 가까운 그곳에 갔던 것이었다. 친구 몇 놈이랑 같이 갔었는데... 그 중 한놈은 헌혈조건 미달이라 헌혈을 못 한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서 팔을 뻗으니 한분이 오셔서 잘 소독된 거즈로 몇 번 닦더니 구멍이 커다랗게 보이는 이따마시한 바늘을 내 팔에 쿡~ 찔렀다. 올~~ 따끔따끔... 조금 굵은 튜브를 따라 위치에너지를 이용하듯 아래쪽에 있는 주머니(?)로 내 피가 고이기 시작했다. 그러길 5분 정도 지났나? 다됐다며 다시 거즈로 바늘이 찌르고 있던 곳에 대더니 바늘을 쑥~ 하고 빼셨다. 이 역시 조금 따끔따끔... 그래도 별 것은 아니었다.
거즈를 대고 있던 부위를 또 다른 손의 손가락으로 지긋이 누르게 하시며 잠시 누워있게 하시더니 이내 홀에 있는 소파 쪽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지혈하기 위해 쓰는 팔 때문에 한 손 밖에 쓰지 못하는 나에게 쟁반에다가 음료수랑 초코파이, 헌혈증을 올려주시며 또다른 선물이 준비되어 있다며 하나 고르라고 했다. 기억이 잘 안난다. 암튼 그렇게 고르고 난 후 자리에 앉아 같이 헌혈한 친구들과 앉아서 음료수랑 초코파이 먹으며 잠시 앉아 있다가 인사하고 나왔다.
이것이 나의 첫번째 헌혈이었다. 근데 그게 재미가 있었다.
그 이후로 거의 2주에 한번 꼴로 갔었다. 전혈은 거의 보름 정도면 재헌혈이 가능했기 때문에 그 때가 되면 친구끼리 같이 몇 명 몰려다니며 헌혈을 하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 1996년 이후 올해 2013년까지 근 18년 간 약 45회 정도의 헌혈을 하게 되었다.
[45회 인증샷] 혈액관리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자신의 헌혈기록 조회가 가능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잘 알겠지만 2010년 이후로 나의 헌혈기록은 멈춰있다.
그나마도 민방위 훈련이 아니었으면 2007년도 부터 멈춰있을 뻔했다. 여기 45회 정도의 헌혈 기록 중 거의 20회 이상 절반이 넘는 횟수가 고등학교 때 한 횟수라고 하면 믿어 지겠는가?
그만큼 고등학교 때는 피 뽑는게 뭐가 그리 좋았는지 헌혈가능 시기가 되면 그 날에 맞춰서 바로 헌혈의 집을 찾아가곤 했다. 그래서 그 헌혈의 집 이모들이랑 엄청 친하게 지낸 기억도 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들어가서도 나름 고등학교 때보다는 못했지만 좀 열심히 했었다.
그러던 중 전혈말고 혈장과 혈소판 헌혈이라는 것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잠깐! [좀 더 자세히]
* 혈소판 [헌혈시간 약 1시간 30분 내외, 개인차 있음]
- 혈액 1마이크로리터에 15~40만개 정도가 있으며, 상처가 났을 때 손상된 혈관벽에 붙고(adhesion) 또 혈소판끼리 서로 엉겨 붙으며(aggregation) 혈액응고를 일으켜 피를 멎게 하는 역할을 한다.
* 혈 장 [헌혈시간 약 1시간 내외, 역시 개인차 있음]
- 혈액의 반 이상 차지하며,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한 전해질, 영양분, 비타민, 호르몬, 효소 그리고 항체 및 혈액응고 인자 등 중요한 단백 성분이 들어있음
전혈도 중요하지만 혈장이나 혈소판 헌혈하시는 분이 더 적어서 그 때부턴 또 시간이 많이 여유가 있으면 혈소판 조금 있으면 혈장 헌혈을 했다. 이 때부터는 약속을 일부러 서면으로 잡아서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나가는 방법으로 헌혈하는 시간을 벌기도 했다.
이랬던 내가 취직을 하고 나서는 뭐가 그리 바빴는지 거의 헌혈을 하지 못했다. 35회 정도까지는 정말 쉽게 갔었는데 그 이후로는 취직을하고 난 상태여서 근 10회 정도 헌혈하는데 든 시간이 약 7 ~ 8 년 걸렸던 것 같다.
그 사이 40회가 넘으면서 다회 헌혈을 했다고 '은장'이라는 명칭 아래 상장과 상패, 그리고 선물로 시계를 받았는데 역시 기념품으로 사용할 정도? 였다.^^
약 7 ~ 8년 동안 많은 횟수의 헌혈을 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뜻깊은 문자를 한통 받은 적이 있었다.
언제부터 인가 어느 한분에게서 문자로 지속적인 안부와 혈소판 헌혈에 대한 권유가 지속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쭤보니 봉사활동 하시는 분인 거의 전업이신 것 같았다. 그 때 그 때 혈소판이 필요한 혈액암이나 그와 관련 질병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바로 아이들이 있으면 문자로 헌혈을 권유하던 분이신데...
한번은 그 문자를 받고 지정된 헌혈의 집(다행히 내가 자주 가는 서면 헌혈의 집)으로 가서 그 아이에게 직접 바로 공급해 줄 수 있도록 지정 헌혈을 실시했고, 잠시 잊어버리고 있던 나에게 그 아이의 엄마에게서 어떻게 내 번호를 아셨는지 한 통의 문자가 온 것이었다. '내 혈소판으로 자신의 아이가 잘 회복되고 있다고... 정말 감사하다고...' 그 문자를 받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내 작은 이 행동 하나로 정말 이러한 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나도 정말 혈액이나 혈소판이 필요할 때가 있을 터인데 더 열심히 헌혈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돌아오긴 했지만... 어제 그 분에게서 또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나에게 혈소판 헌혈을 권유하는 문자였는데 정말 다급해 보였다. 문자 수신 시간을 보면 알겠지만 오전 8시 26분과 9시 57분에 수신된 문자였다. (현재 나는 미국에 있어서 시차를 계산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아침부터 이렇게 다급하게 온 걸보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 현재 미국 출장 중이라서 죄송하다고 답신을 드렸더니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출장 잘 다녀오라는 문자가 다시 왔다. 정말 죄송했다.
그러나 내가 한국에 있었더라도 수원에 있었기 때문에 못했겠지만 내가 부산이었더라도 바로 뛰어가기가 쉬웠을까... 시간은 바로 오전에 출근하고 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헌혈해야 한다고 한 생명이 꺼져간다고 했으면 과연 보내주셨을까? 가능했겠지만 내 업무가 그 시간에 과중했더라면 급하게 처리해야하는 업무가 있었다면... 네거티브한 상상을 잠시 해보긴 했었지만 이내 기도한다.
이러한 상황이 생겨 꼭 내가 필요한 순간이 오게 되면 꼭 내가 달려갈 수 있도록 그래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꼭 주변의 상황을 정리해달라고...
예전에 우리나라의 헌혈하는 사람이 줄어서 혈액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다. 죄송하게도 나도 잘 하지 않던 때여서 할 말은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헌혈에 동참하여 혈액이 풍부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 혈액이 나에게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니 모든 사람이 헌혈을 하는데 생명을 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 의식을 가진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문자의 주인공 그 아이가 걱정이 된다. 별 이상이 없었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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